[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영혼의 호수에 돌을 던지면
영혼도 눈물 흘린다. 슬프면 혼자 운다. 밤새 어둠 속을 헤매다가 새벽이면 별빛 받아 반짝인다. 이슬은 영혼이 흘린 눈물이다. 영혼의 호수에 돌을 던지면 풍덩 소리 나지 않는다. 잔잔한 진동으로, 작은 파장으로 호수를 빙그르르 돌며 퍼져나간다. 사는 게 지치고 허기지면 영혼이 흐느낀다. 마음이 병들면 영혼을 갉아먹는다. 영혼은 정신과 구별되는 생명 원리다. 산 사람의 육신에 깃들어서 생명을 지탱해 주는 기(氣)로 인식된다. 육신의 죽음과 무관하게 그 자체의 실체를 존속시키는 능력이 있어 초월성을 지닌다고 믿는다. 사람의 몸 속에는 공기나 불 같은 것이 들어있어 그것이 신체를 지배하며, 잠들었을 때와 기절했을 때는 이것이 잠시 몸에서 떨어져 나가며 죽게 되면 몸에서 빠져 나와 그림자나 망령이 되어 허공에 떠돌아 다닌다고 생각한다. ‘우리 인생길의 한 중앙, 올바른 길을 잃고서 어두운 숲을 헤매이고 있었다.’ 신곡 (Devine Coedy) 지옥편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단테 알리기에리는 르네상스의 여명을 밝힌 선구자로 신곡은 중세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신곡은 단테가 1302년에 고향 피렌체에서 추방된 후 유랑 생활 중 1308년 시작해 죽기 1년 전인 1320년에 완성한 1만4233행으로 된 서사시다. 단테는 위대한 시인이고 스승인 베르길리우스와 영원한 사랑 베아트리체의 인도로 지옥 연옥 천국을 순례한다. 단테는 아홉 살 때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나 천사를 보는듯한 환상에 빠지는데 9년 뒤 베키오 다리 위에서 스치는 듯 다시 만나지만 베아트리체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단테의 나이 37세, 피렌체 최고의 권력자로 부상하지만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려 빵을 얻어먹는 망명자로 전락한다. ‘천국’편에서 ‘남의 빵이란 얼마나 쓴 것인지, 또 남의 층층대를 오르고 내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라고 단테는 인생의 나락에서 허우적거리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별을 찾아 불멸의 대작을 완성한다. 지옥편에서 단테는 ‘나 이전에 창조된 곳은 영원한 것뿐이니,/ 나도 영원히 남으리라./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라고 적고 있다. 단테는 희망을 버리는 것이 지옥이라고 말한다. 희망의 징조는 어디든지 있다. 모진 지옥불 속에서도 영혼은 불타 오르고, 믿고 사랑하는 것들 속에 희망의 씨앗은 싹을 틔운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지옥과 천국을 오고 가는 순례자의 길인지 모른다. 그 길이 멀고 힘들고, 발길이 무거워도 되돌아 갈 수는 없다. 다만 믿고, 사랑하고, 감사하고, 허리 굽혀 땅에 입맞추며, 각자의 어깨에 지워진 고행의 길을 걸어갈 뿐이다. 영혼은 죽지 않는다. 고통 속에 꽃을 피운다. 육체가 망가지고 죽음이 어둔 그림자를 창문에 드리울 때 어쩌면 영혼은 하얀 날개를 펴고 하늘 높이 날아가지 않을까. 소멸은 잠시 형체만 바뀌는 것. 가지려 애썼던 모든 것들이 허공에 흩날리다 땅 속 깊이 묻힌다. 어릴 적 동무들과 물수제비 튕기는 내기를 했다. 동무들의 던진 조약돌은 반원을 그리며 물 위를 사뿐히 걸어갔다. 내가 던진 조약돌은 물에 빠져 작은 파장으로 번져나갔다. 조약돌이 물 위를 걷지 못해도 작은 원으로 번지는, 물이 그리는 그림은 아름다웠다. ‘가을엔 곡식을 비추는 따사로운 빛이 될게요, 겨울에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이 될게요, 아침엔 종달새 되어 잠든 당신을 깨워줄게요’ -‘천개의 바람이 되어’중에서 영혼이 일탈을 꿈꾸는 아침, 가슴 밑바닥으로 찬바람이 분다. 청춘 시절에는 몰랐다. 바람이 비를 몰고 온다는 것을. 작은 슬픔이 큰 파도로 인(Q7 Editions 대표, 작가) 생길을 덮친다는 걸. 남은 시간이 살아온 날들 보다 적다는 것도 이제 깨닫는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영혼 호수 사랑 베아트리체 단테 알리기에리 editions 대표